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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방송] 광주고려인마을 산책, 고려인문화관에서 만난 ‘쌀이냐 책이냐?'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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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월곡고려인문화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95회   작성일Date 23-02-09 10:41

    본문

    [고려방송] 광주고려인마을 산책, 고려인문화관에서 만난 ‘쌀이냐 책이냐?'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을 찾는 관광객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려인선조들의 이주사와 생활사, 한글문학, 그리고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1만2천점의 유물이 소장된 고려인문화관을 만날 수 있다.

    고려인문화관에 들어서면 광주고려인마을 형성과정을 설명해 주는 게시판에 이어 1937년 고려인강제이주 경로를 표시한 지도를 볼 수 있다.

    * 광주고려인마을 산책, 고려인문화관에서 만난 ‘쌀이냐 책이냐?/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아울러 1870년대 고려인 러시아 연해주 이주를 시작으로 홍범도 장군 기록물과 백마탄 장군 김경천 장군의 경천아일록 등 항일독립전쟁사, 한글문학의 시조 조명희 시인의 슬픈 한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시 ‘짖밟힌 고려’ 설명에 이어, 1937년 고려인강제 이주와 토굴집 등 연대기별로 전시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고려인 선조들의 강제이주과정 속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벽면 게시판은 관람객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는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이 기록한 글로 제목은 ‘‘쌀이냐 책이냐?’ 다.

    구 한말 관리들의 학정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던 고려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될 때 다수는 불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줄 최후의 수단은 ‘쌀’ 이라 여기고 당장 물리적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씨앗, 재산을 가지고 열차에 올랐다.

    반면 소수의 다른 고려인들은 어두운 밤하늘에 길잡이 별이 되어 줄 것은 오직 ‘책’ 이라 확신하고 주위의 비난과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책과 활자, 서류를 들고 열차에 탔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쌀’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척하여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함으로써 고려인사회를 빠르게 안정시켜 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책’을 사랑하는 괴짜 동료들이 물질적으로 고통받지 않고 뜻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따라서 ‘책‘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이주 초기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낯선 땅에서 한글문학과 모국어 문화예술을 소중히 지켜나갔다.

    그들은 학교와 신문사, 극장에서 모국어를 가르치고 작품을 쓰고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쌀‘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민족문화 공동체로 인도했다.

    이 두 부류의 고려인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오늘날의 고려인사회를 지켜왔다.

    ‘쌀과 책’ 즉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은 디아스포라 고려인사회를 이끌어 온 거대한 수레의 양대 축이었다. 그러므로 고려인 강제 이주사, 나아가 고려인 전체 이주사를 놓고 누군가가 ’쌀이나 책이냐?‘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쌀도 책도 둘 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려방송: 엄엘리사(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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