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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방송] 광주고려인마을, 민족주의자 김경천 장군 생애 통해 잃어버린 권리회복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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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월곡고려인문화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4회   작성일Date 23-08-30 11:23

    본문

    [고려방송] 광주고려인마을, 민족주의자 김경천 장군 생애 통해 잃어버린 권리회복에 나서
    최근 김경천 장군의 연보를 정리해 발표한 광주고려인마을은 30일 ‘김경천 장군 특별전과 세미나’ 에 앞서 김 장군의 조국애와 그의 강인한 민족정신을 알리며 광주이주 고려인동포들의 애타는 심정을 전하고 있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그동안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에 가담한 고려인 선조들의 역사는 잊혀진 역사였다. 이에 국내 귀환 고려인동포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외국인노동자의 삶에 불과했다. 따라서 국적은 물론 영주권조차 얻기 어려운 고난의 삶이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마냥 손놓고 바라볼 수 만 없어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당당한 권리와 국적회복을 위해 고려인마을은 선조들의 잊혀진 역사와 피어린 삶의 조명을 통해 권리를 회복하고자 작은 힘이나마 모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 고려인마을은 30일 오후 2시 ‘김경천 장군 특별전과 세미나’를 시작으로 고려인선조들의 잊혀진 역사회복에 나섰다는 계획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고려인마을은 최근 민족주의자 김경천 장군의 연보도 정리해 발표했다. 또한 그의 강인한 민족정신을 보여주는 내용을 상세히 밝혀 공산주의자가 아닌 진정한 민족주의자 김경천 장군의 조국애을 널리 알려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해 나갈 방침이다.

    고려인마을이 발표한 김 장군의 연보 중 눈에 띄는 부분은 1920년(32세) 만주 수청지역에 수시로 출몰하여 유랑민으로 전락, 낯선 이국땅을 떠도는 고려인을 괴롭히는 마적들을 잇따라 소탕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1920년 5월 18일 부족한 인원과 빈약한 무기로,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잘 무장한 채 한인마을을 약탈하고 방화하던 마적 300여 명을 일거에 섬멸했다. 이어 김 장군은 마적토벌 후 수청지역에 군정을 단행하고 군정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인은 물론 중국인과 러시아인까지도 김경천의 증명서를 받아야 수비구역 내외를 출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식 교육제도를 전폐하고 아동을 모국어로 교육하게 하는 등 여러 제도를 개혁했다. 이를 계기로 김경천의 이름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1921년 4월에는 수청고려의병대 총사령관이 되었다. 한창걸의 고려로농군회와 강국모의 혈성단이 연합하여 수청고려의병대를 만들고 김경천을 초청해 사관 양성과 군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연해주에서 사관 양성 교육은 오직 김경천 만이 할 수 있었다. 이로써 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어 실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들도 볼 수 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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